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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후기

2024 서울마라톤 풀코스 참가 후기

Part.1 김현민 편

잠이 오지 않는다. 오후 10시전에는 잠이 들어야 기껏해야 6시간 잘 수 있는데,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얼마나 흘렀을까. 혹시나 해서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11시가 넘어 버렸다. 큰일이다. 수면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버렸다는 압박에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진다. 간신히 잠을 청했고 눈을 떠보니 새벽 1시다.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이 다시 떠졌다. 새벽 2시, 새벽 3시. 이럴거면 수면을 포기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정신이라도 차리자는 마음으로 그냥 씻어버렸다. 어차피 1시간 더 잔다고 모가 달라질거 같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건 발가락 통증 체크였다. 화장실 바닥에 맨발로 쌔게 몇 번 디뎌봤다. 역시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화도 나고 짜증이 밀려온다. 그나마 다이소에서 발가락 실리콘 패드를 미리 사놓길 잘한거 같다. 조금은 심리적으로 위안이 됐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방섭님과 성권님을 만나러 요진 상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방섭님을 보자마자 바로 눈치챘다. 아직 많이 아프시구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억지 미소도 다 보였다. 성권님은 언제나 그랬듯 밝고 여전히 씩씩하다. 참 에너지 넘치는 분이다.

서울로 향하는 4호선 첫차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처럼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타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중에는 생계를 위해 타신분들도 계신 것 같았다. 오전 5시 27분 첫차를 타기 위해 이분들은 몇시에 일어나신걸까. 참 존경스럽다. 물론 개중에는 무박2일 음주로 횡설수설하는 분들도 보였다. 체력도 좋다..

대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은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죄다 여기 모인것마냥 북새통을 이뤘다. 대회는 축제의 장이 따로 없다. 특히 규모가 큰 러닝크루도 많이 모였는데, 이분들은 정말 대회 자체를 온전히 즐기시는 것 같아 보기 좋았고 한편으로는 우리 고런크루도 언젠가 이렇게 큰 대회에 많은 인원이 함께 참여한다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D그룹. 출발선에 섰다. 나는 D그룹 중간쯤 섰는데 역시 중간에 있는 선택은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3.1기념 마라톤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병목현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오랜 경험자분들의 조언대로 처음 1~2K는 빨리 달릴 생각도 없었다. 주위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뛰다보니 어느덧 5K 구간을 지나게 되었고, 다른 대회 같으면 이쯤 됐으면 병목현상이 줄어야 하는데 역시 동마는 동마다. 병목은 계속 된다.

10K구간쯤 왼발 뒷꿈치에서 통증이 시작됐다. 왜 그러지 하고 달리면서 곁눈질로 뒷꿈치를 보니 뒷꿈치가 까졌다. 아차, 단목 발가락 양말에 중목 양말을 덧대어 신는다는걸 깜빡했다. 이렇게 미련할수가… 가방에 양말을 둔채 이미 물품을 보관한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다. 참고 견딜만하니 그냥 가보자. 하프쯤 오니 통증이 심해졌다. 대충봐도 러닝화 힐컵에 피가 묻어있는걸 알 수 있었다. 페이스는 어떻게든 유지를 했지만 더 이상 페이스를 올리는건 힘들었다. 달리다보니 의료봉사하시는 분이 계셔서 다급하게 ‘혹시 가지고 계신 데일밴드 없나요?’ 라고 물었는데, 파스밖에 없단다. 한숨이 나왔지만 모 어쩌겠나. 그냥 가야한다. 다시 10K가 흘러 30K구간에 도달했다. 여기부터는 컨디션이 좋아도 힘들다. 근데 정말 웃긴건 모든 신경이 뒷꿈치 통증에 집중되다보니 다른부위 통증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다. 38K부근부터 잠실대교를 건넌다. 여기는 수많은 러닝크루들이 자기네 멤버들을 열렬히 응원하며 러너들에게 힘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분위기에 전혀 속하지 못한채 계속 의료봉사하는 분만 찾았다. 겨우겨우 의료봉사하는 분을 만나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데일밴드 없나요?’. 또 없다. 봉사하시는 분이 내 상처를 봤는지 “아휴….피가 많이 나네~ 상처를 빨리 치료해야할꺼 같은데…”.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의료봉사하는분을 뒤로 한채 다시 달리며 이가 악물어지며 속으로 욕이 나왔다.
‘X발 왜 그 흔한 데일밴드조차 없는거야!!.’
그분은 죄가 없다. 멍청한 내 탓이다. 100M가 이제 나에게는 1KM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이게 힘들어서인지, 양말 하나 못챙긴 멍청한 나에 대한 원망인지는 모르겠다. 썬글라스를 챙기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부에 묻어있는 땀과 썬크림이 눈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오는걸 손으로 닦으며 계속 달렸다.

완주.
끝났다. 기록은 3시간 45분 51초. 전 같으면 첫 풀코스 때처럼 완주에 대한 기쁨과 종전 기록보다 22분이나 단축하며 Sub4를 달성한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으로 환희를 느꼈을 지금이 나에게는 온통 고통만 있을 뿐이다. 니체 성님이 말씀하셨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할 뿐이다.’ 순간 그냥 X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인지점을 지나 절룩이며 의료부스를 찾았는데 의료부스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서 두리번 두리번 대다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42.195K를 달려 그제서야 주저앉아 신발을 벗어 자원봉사하시는 분에게 상처를 보여주며 ‘데일밴드 없나요’ 또 물었다. 상처가 심한걸 확인하더니 “일단 여기 좀 앉아 계세요. 아무래도 제가 다녀오는게 좋겠습니다.” 라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데일밴드에 연고까지 묻혀 나에게 전해 주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자원봉사자. 또 울컥했다. 40대가 되서 그런가 눈물이 더 많아진거 같다. 역시 썬글라스를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이렇게 오늘도 82년생 개띠 김현민의 러닝인생에 또 한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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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송방섭, 김성권 편

대회 몇주전부터 단톡방을 만들어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상당수는 바로 방섭님의 회복상태였다. 사실 3.1기념 마라톤에서 인생 첫 Half를 뛰고 약 보름 정도 지나 첫 Full 을 도전하는건 미친짓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방섭님의 풀코스 완주에 대한 간절함을 알았기에 우리는 방섭님의 부상상태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외면해보려고 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Sub4 달성. 지금에서야 그 목표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여러 대화중에 성권님에게 목표를 물었다. “저는 이번에 방섭님 페이스메이커 하려고요. 끝까지 뛰어서 함께 완주해보려고 합니다.” 내색은 차마 안했지만 순간 부끄러웠다. 나보다 어린 친구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무료 대회도 아니고 무려 8만원이라는 큰 돈을 내고 참여하는 대회인데 개인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한단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대회 당일 정신없이 물품을 맡기고 잠깐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방섭님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 한채 각자의 그룹으로 향했다. 소염진통제까지 챙겨오셨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완주에 대한 방섭님의 의지는 누구도 꺽을 수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이기적이게도 오로지 성권님께 걱정의 baton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먼저 골인지점을 통과한 나는 절룩이며 응원하는 인파쪽으로 가봤다. 혹시나 들어오는 장면을 놓칠까 싶어 기다려보려고 했다. 10~20분 기다리다 도저히 통증이 가시질 않아 먼저 치료를 받고 물품을 찾으러 갔다. 내가 대략 3시간 45분 걸렸으니 물품을 찾고 방섭님과 성권님을 마중하러 가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물품 회수 대기줄은 길었다. 그때 잠시 진휘님 생각이 나서 진휘님께 연락해보니 이미 물품 찾고 회사 동료분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인생 첫 풀코스에서 좋은 기록을 얻은게 기뻐보이는 목소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 자리를 빌어 진휘님 첫 풀코스 완주와 Sub4 달성 축하 드립니다.)

물품을 수령하고 다시 골인지점으로 갔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어디쯤에 계신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5시간이 지났다. 혹시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신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다리 상태가 안좋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기록조회 사이트가 떠올랐다. ‘혹시 방섭님과 성권님 기록 조회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방섭님과 성권님 배번호를 모른다. 다행인건 송방섭, 김성권이라는 이름이 김현민 보다는 훨씬 덜 흔하다. 희한하게도 딱 2명씩 나오길래 한명씩 눌러봤다. 위에 있는 분은 이미 완주했댄다. 근데 기록이 대충 봐도 방섭님 기록이 아닌듯 했다. 그렇다면 아래밖에 없다. ‘배번호 27301’ 이거다. 조심스럽게 눌러봤다.

‘레이스 진행중’ (정말 이렇게 나온다)

‘모야 진짜 포기 안한거야!??’ 구간 기록을 보니 40K 지점을 지금막 통과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도착 예정시간 13:49’

큰 대회라 그런지 40K 통과시점에서 평균페이스를 계산해서 42.195K 통과시간을 예측해준다. 앞으로 15분 남았다. 응원석에서 기다리다가 펜스를 건너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47분, 48분, 49분.. 기록조회 사이트에서 알려준 시간이 지났는데도 성권님과 방섭님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아예 주로로 나갔다. 잠시라도 가까이서 두분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보인다!’

드디어 보인다. 성권님의 현란한 싱글렛이 보인다. 갑자기 울컥했다. 미쳤다 정말. 그래서 소리쳐본다.

‘송방섭 파이팅, 김성권 파이팅!!!’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량으로 소리치며 가까이 달려갔다. 방섭님의 절룩이는 모습과 촉촉해진 눈망울. 42.195K를 달리며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디며 달려왔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정말 존경스러웠다.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성권님과 방섭님이 서로 부둥껴 안는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 감격스러운 장면을 나혼자만 본게 못내 아쉽기까지 하다.
‘이런게 마라톤이구나. 기록이 모가 대수겠는가.’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두분이다.

어제 고생 많으셨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회복 잘 하시고 앞으로 즐겁게 계속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기록인증이나 다른 사진 없이 이사진 한장만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