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참가하셨던 울트라 철인 어르신분들께서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다음날 되면 통증은 없어지고 고통이 미화되어 다음 대회를 찾고 있을거라 하셨기에 되도록 어제 후기를 안쓰고 오늘까지 기다려봤는데, 역시 통증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고 전신 근육통만 있어서 어그적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어르신분들이 말씀하셨던 다음 대회를 찾는일이 발생하지 않아 참 다행인거 같습니다 😥
어제 다녀온 후기를 간단히 작성해 볼께요 🫡
1. 대회전
전에도 살짝 언급한적 있지만, 원래는 2024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K에 나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지난번 KOREA 50K 이후 혼자 10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는게 너무 외로운듯하여 성권님께 5.18을 기념하여 함께 51.8km나 100km를 달려보면 어떠냐고 밑도 끝도 없는 제안을 한 것이 시작이었던거 같습니다. 다행히 성권님께서 긍정적으로 함께 해주신다하여 미련 없이 100km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100km를 뛴 경험도 없고, 뛴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기에 거리에 대한 감도 없어서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도전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그냥 해보자’ 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고민은 배송을…. 아니 시작을 어렵게 할 뿐이니까요 😅
2. 대회장 도착
여유로울 줄 알았던 일정이 역시 계획과는 다르게 항상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따라 테이핑은 왜이리 안되는지 붙이는 족족 떨어지네요. 환장할 노릇입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어디에서나 볼법한 인상의 아주머니, 아저씨들 천지이고, 간간히 젊은 주자들이 보입니다. 주최측의 말씀을 들어보니 원래 울트라 대회는 대부분 경력 많은 분들 위주로 접수가 되는데 올해에는 러닝붐이라 그런지 젊은분들과 처음 출전하시는 분들도 많이 신청을 하였다고 합니다.
대회를 나가기전에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이 바로 신발 선택이었습니다. 100km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신발을 착용해야 할까.. 쿠션이 풍부한 것을 신는게 나을지, 아니면 발목을 안정적으로 잡아서 흔들림없이 가는게 나을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고민 고민 하다가 어차피 50km 이후는 내 힘으로는 갈 수 없을 테니 카본플레이트의 힘을 빌려 탄력주행 해보자! 라고 결심하고 이번에 구매한 슈퍼플라이업 카본을 신고 나갔습니다. 저의 생각이 적중했던걸까요? 대회장에서 다른분들이 무슨 신발을 신었나 둘러보니 꽤 많은 분들이 카본화를 신고 계십니다. 대충 봐도 50대는 중반은 되어 보이는 포근한 인상을 가지신 아주머니들이 알파플라이3 프로토 타입을 신고 오셨네요. 아디제로 프로3는 흔합니다. 이런 대회에서 이런 최상급 레이싱화들이 보이니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ㅎㅎ
3. 전반전(0-60km)
전반전이 50km가 아닌 60km인 이유는 대략 짐작하셨겠지만, 성권님과 함께 했던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출발전에는 누구나 그렇듯 저와 성권님도 설레임을 안고 출발했던거 같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이니 지금 밟고 있는 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거 그뿐이니까요.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15km쯤 무더위로 인해 성권님이 지치기 시작합니다. 저도 더위에 약한 편인데, 성권님도 만만치 않게 더위에 약하시더라구요. 다행히 3시간쯤 지나니 해가 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기력을 회복하셨고, 우리는 이때 전체 레이스중 가장 즐거운 레이스를 펼칩니다. 바람도 상쾌하고 기온도 딱 적당하고, 마치 새솔동 저녁런 하는 기분입니다. 중간 중간에 사진도 찍으며 경쾌하게 발을 굴려 봅니다. 달리다 보니 긴 터널도 나오는데 대회장에서 터널 지날 때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냈던 기억에 우리도 목청껏 소리도 쳐봅니다.
40km쯤 되니 성권님의 다리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불수사도북 대회를 다녀오고 회복이 안된터라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근육이완제를 먹고 견디며 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약발도 안먹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권님의 고통의 신음소리가 계속 옆에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해줄게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정신줄 하나 부여잡고 달려온 분에게 차마 그만두라는 말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포기도 용기라며 다른분들을 위로했던 제가 뻔뻔한 위선자가 되어버렸네요.
50km 반환점에 도착할쯤 성권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아무래도 저 안될거 같아요. 50km 지점에서 복귀하는 차량 있으면 가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 순간 복잡한 감정이 들더라구요. 함께 완주하려고 시작한 울트라 마라톤을 나 혼자라도 완주를 해야할지, 아니면 걷더라도 끝까지 완주하자고 고집을 부려볼지.. 남은 거리가 아직도 50km나 남았기에 혼자 가려니 겁도 나고 그때는 정말 참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거 같습니다. 다행히 성권님께서 50km 반환점에서 주최측에서 준비한 육개장을 한사발 드시고 또다시 진통소염제를 먹고 그나마 남은 마지막 정신을 가다듬고 10km만 더 가보자고 하십니다. 조금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역시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우리가 함께한 여정은 그렇게 60km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4. 후반전(60-100km)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40분. 몸도 정신도 이제는 지쳐 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가야 합니다. 체력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있을 때 속도를 내보자 하고 630페이스까지 올려봅니다. 5km나 갔을까요. 너무 지칩니다. 칠흑같은 어둠에서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혼자 달리니 갑자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완주하고 성권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때 성권님 원망도 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기로 했는데 혼자 달리니 이런 못난 생각만 듭니다. (죄송해요🥲) 이때부터는 진짜 주변에 사람도 없이 혼자 달렸던거 같습니다. 참가인원이 많지 않고 거리도 길다 보니 주로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죄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80km지점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뛰질 못했습니다. 온몸이 부서질거 같았거든요. 다른 부위는 어떻게든 버틴다 해도 발목과 발바닥이 너무 아팠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통증이 엄습합니다. ‘멈춰야 하나’.. KOREA 50K때도 들지 않았던 냐약한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통증을 넘어 고통이 됩니다. 다행히 조금 더 가니 CP가 있어서 잠시 쉬면서 신발을 벗고 그동안 신고 있던 발가락 양말을 벗었습니다. 발가락이 퉁퉁 부었습니다. 발이 아팠던 원인이 바로 이거였네요. 발과 발가락은 퉁퉁 부어가는데, 발가락 양말이 조이니 아팠던거 였어요. 서둘러 미리 싸온 두툼한 러닝 양말로 갈아 신으니 갑자기 괜찮아집니다. 오! 잘하면 다시 뛸 수 있겠다! 10분페이스.. 9분 페이스.. 마지막 CP인 90km 지점에 오니 7분대 페이스까지 나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때가 다른분들이 말씀하시는 ‘Runner’s High’ 상태였던거 같습니다.
5. 완주
멀리 피니시 라인이 보입니다. 됐다. 다왔다. 이제 정말 끝이다. 바닥만 보며 달리던 그때, 멀리서 엄청난 성량의 ‘김현민 파이팅’이 들려옵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성권님입니다.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많이 지치셨을텐데 저를 보며 댕댕이처럼 반가워하며 제 옆에서 함께 달리며 힘내라고 응원해 줍니다. 이제서야 얼굴에 미소가 생깁니다. 60km 이후 처음으로 웃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성권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골인지점을 통과했고, 정신을 차리고 기록을 살펴보니 14시간 55분이네요. 무박 2일을 달렸습니다. 애초에 기록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완주만을 목표로 했기에 정말 기뻤고, 한편으로는 이 피니시라인을 성권님과 손잡고 함께 통과하지 못한게 넘 아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암튼 이래저래 마냥 기쁘기만 하진 않고 복잡한 심정이었던거 같습니다. 이 때 감정이나 생각은 사실 선명하진 않습니다. 그냥 너무 힘들었습니다.
6. 대회 종료
대회가 끝나고 성권님과 주최측에서 마련한 차량에 탑승해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서로의 알몸을 공유(?) 하기엔 다소 부끄러웠지만, 모 어떻합니까. 이대로 집에 바로 가기엔 너무 지쳤습니다. 목욕탕에서 아이싱을 하며 다리를 풀어주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쌩쌩하네요. 저만 힘든가 봅니다. 역시 사람은 겉모양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나이 지긋이 든 60대 분들이 저보다 팔팔하십니다. 심지어 같이 오신 동지분들과 다음 대회를 기약하고 계시네요. 헐.. 저는 그저 달리는거 좋아하는 쪼랩 달림이 맞는거 같습니다. 세상은 넓고 괴수는 많다. 역시 그 말이 맞네요. (아 SRC 내 가까이에도 몇분 계시죠)
쓰다보니 후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후기가 아무리 길어도 그날의 추억을 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거 같습니다. 성권님과 함께한 그날의 추억은 제 가슴속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
<사진 몇장>
대회장에 도착해서 한컷... 이때는 몰랐다. 우리의 앞날을...



달리면서 여유라는 사치를 가졌던 잠깐의 순간들.. 멀리 롯데타워가 보인다.



첫번째 CP에서.. 참 밝았는데..



남들 흔히 하는 점프샷도 한번 찍어본다...



달리다보니 어느새 하남까지 왔다. 살짝 지쳐보이기 시작한다.



열심히 달리는 성권님. 이때 미소는 그냥 미소가 아니었음을....



해가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따봉을 외치다.



하남을 지나니 이런 긴 터널이 몇군데 있다.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달리다보니 너무 예쁜 카페 같은 곳이 있어서 한장씩 찍어봤다. 분수가 참 예쁘다.



드디어 반환점인 50km 지점에 도착!



50km지점에는 주자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대회 주최측에서 육개장과 다양한 먹거리를 준비해줬다. 이때 먹었던 육개장 정말 너무 맛있었다 😊



성권님과 이별을 했던 60km 지점... 이때가 함께한 마지막이었다 ㅠ_ㅠ 성권님은 내맘도 모르고 쓸데없이 밝다 젠장...ㅜㅜ



칠흑같은 어둠.... 홀로 헤쳐나가야만 한다. 내가 완주해야 성권님도 날 보내준 의미가 있다. 완주를 해내야한다는 사명감마저 느낀다.



완주 직전 성권님께서 촬영해준 영상.... 정신이 나간 사람 같은 나..






드디어 완주다! 끝이다!!!






이상 후기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s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저를 응원해주신 SRC 멤버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 제가 할 수 있으면 여러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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