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녀온 서울100K 후기를 담백하게 작성해 봅니다.
먼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 모를 대회에서 끝까지 동행해 주신 진휘님께 감사드리고, 특히 늦은 시간까지 보잘 것 없는 저의 도전을 지켜보며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SRC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레이스 중간중간에 힘들 때마다 응원 메시지를 보며 울컥울컥하고 어떻게든 쥐어 짜보려고 힘을 낸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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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줄여서 서울100k, 넌 이름도 길구나) 후기
'다른 의미의 PB'
<약간의 소감>
제가 최종목표로 했던 대회를 드디어 마쳤습니다.
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2022년 10월부터 꾸준히 달리며 처음에는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만이 목표였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기분이 묘합니다. 약간의 공허함도 듭니다.
2024년 3월 서울마라톤(동마)에서 로드마라톤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Sub 4(저에게는 Sub3만큼 값진 목표)롤 달성한 후 4월에 코리아50K(트레일), 5월 서울한강(로드100K), 그리고 어제 완주한 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이하 ‘서울100K’) 까지 모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온 인생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신체가 다른 분들처럼 튼튼하지도 않으니 그저 끈기와 정신력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습니다.
누가 어제 완주 소감을 물으신다면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선명한 기억은 드디어 눈 감고 잘 수 있다는 생각과 무사히 완주해냈다는 ‘안도’인 것 같습니다. 완주의 기쁨보다 안도가 큰 이유는 25시간의 레이스과정이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순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100K에 대해>
서울 100K의 100K부문(실제로는 110K지만…)은 서울 중심인 서울광장을 출발하여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등 주요 강북산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서울 외곽을 달리는 멋진(?) 코스입니다. 다만 북한산만 3번 정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해야 하기에 좀 힘든 구간이 있습니다. 신청자격은 UTMB index 50K 또는 ITRA 포인트 2 이상자로, 쉽게 말하면 최근 2년 안에 50km 수준의 트레일대회를 완주한 이력이 있어야 합니다.






대회신청자……………………… 223명(내국인 190명, 외국인 33명)
미출발자(DNS)………………..…20명 (출발 전 포기)
최종참가자…………………….... 203명(남자 174명/여자 24명)
중도포기자 및 컷오프(DNF)…….30명(남자 25명/여자 5명)
<레이스 전날>
큰 대회, 특히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대회 전날은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설렘, 걱정, 두려움 등의 복합적인 생각에 잠을 푹 못 주무실 겁니다. 저 또한 여태껏 대회를 앞두고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는데, 이번 서울100K는 유독 심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5시 레이스 출발을 위해 집에서 새벽 1시에는 기상을 해야 했기에 금요일 퇴근 후 이른 저녁부터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잠이 오기는커녕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습니다. 혹시나 이런 일을 대비해 수일 전부터 카페인을 끊었는데도, 무슨 일 때문인지 잠을 자지 못했고,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대회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몇 시간의 수면을 하지 못한게 전체적인 저의 리듬에 적잖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완주를 해냈을 때의 그 기쁨과 설렘을 상상하기도 하고, 혹시나 늦잠 자서 대회장에 못 가면 어쩌지? 레이스 중에 갑자기 배탈 나면 어쩌지? 대회 전날 비가 많이 왔는데 다운힐 내려가다 미끄러지면 어쩌지? 풀 알레르기 때문에 풀독, 재채기가 나오면 어쩌지? 이러다가 진짜 완주 못 하면 어쩌지? 만약 그러면 나 정말 도전했다는 걸로만 만족할 수 있나? … 등등 정말 별의별 생각이 끊임없이 드니 잠이 올리가 없습니다. (오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수면인 목요일 이후 거의 50시간 무수면 상태였네요)
약간 몽롱한 상태로 진휘님을 만나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제서야 정말 대회가 실감이 납니다. 여기저기서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다른 참가자분들 얼굴을 보니 설렘과 긴장감이 묻어납니다. 이제는 정말 시작입니다.
<전반부 0-53km>
서울100K는 전반부가 가장 핵심입니다. 가장 힘든 코스(북한산 3번 왕복)가 몰려 있기 때문에 전반부만 잘 운영한다면 후반 50K는 수월한 편입니다.(물론 체력이 허락하는 한) 저와 진휘님 그리고 함께한 제 지인까지 3명이 함께 달렸는데, 레이스과정을 라이브로 지켜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당히 페이스가 좋았습니다. CP2(약 22k 지점) 기준으로 그 페이스를 기준으로 산출한 완주 예상시간이 15시간 언더였으니 정말 잘 달린 겁니다. 이 기록이었으면 상위권 정도도 노려볼 페이스였습니다. 전날 밤을 새웠는데도 초반에 이상하게 피곤함이 없어서 정말 신나게 내달렸습니다. 그전에 성권님과 함께 사전답사를 온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익숙한 지형과 구간별 페이스 조절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성권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CP3까지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나 역시 뭐든지 그냥 주는 건 없나 봅니다. CP3을 향해 달려가던 중반쯤 갑자기 배가 아픕니다. 그 뒤로도 수차례 화장실을 들락날락.. 배탈이 났습니다. 달리기만 하면 배가 아파 어느새 속도는 점점 줄어듭니다. 저희를 제쳐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이때부터 진휘님이 리딩을 해주셨는데 그나마 어찌어찌 따라는 갔지만 화장실을 다녀올수록 몸이 점점 축나는 기분이고 무엇을 채워 넣기만 하면 다시 나오니 보급을 제대로 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다행히 중간에 약을 먹고 좀 진정이 되어 전반부인 CP5(53K 지점)까지 마무리가 잘 되었고 초반보다는 상당히 늦어진 페이스였지만 지금이라도 이대로만 한다면 20~21시간 언저리에 맞출 수 있는 기록이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마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서로 우스갯소리로 마지막 코스인 한강 Half 코스를 600 페이스로 뛰며 한 명씩 제쳐나가는 상상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제가 너무 웃기네요
<후반부 50-90K>
고난의 시작이었던 후반부입니다. 배가 진정이 되니 이제는 오른쪽 무릎 뒤쪽 오금 주변부에 통증이 옵니다. 대회나 훈련에서 이런 통증 경험이 없어서 일단은 꾹꾹 참으며 진휘님을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통증 정도가 경미해 어느 정도 참으면 참아지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다리에 아예 힘이 안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고, 이내 오르막을 평지처럼 뚜벅뚜벅 올라가는 진휘님의 강력한 오르막 신공을 도저히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진휘님께 조금 더 천천히 가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렇게 우리는 저로 인해 점점 페이스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나마 전반부에 끌어올려 놓았기에 망정이지 까딱했다가는 저 때문에 모두 컷오프까지 당할 지경이었으니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 CP를 지나고 깔딱고개만 남은 상황. 도저히 그냥 걸을 수 없어 제 지인이 가져온 스틱을 빌려 스틱의 힘으로 최대한 제가 낼 수 있는 속도로 걸어봤습니다. 옆에서 진휘님이 지금 속도가 좋다며 아주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시는데, 그때 사실 기분은 고마움보다는 미안한 마음 반 답답한 마음 반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그랬습니다.
무사히 깔딱고개를 넘어 드디어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때부터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어야 하는데, 앞으로 20K를 더 가야 한다니 한숨만 나오네요.
<90K – Finish>
남은 거리는 20km. 지금 시간은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레이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21시간이 흘렀습니다. 현재 제 최대 보행속도인 5km/h 가면 앞으로 4시간이 더 걸립니다. 모두 너무 지쳐있었고 몸은 만신창이입니다. 이제는 걸으면서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야 합니다. 지하철에서 서서 졸은 적은 있지만 걸으면서 졸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진휘님, 제 지인까지 저로 인해 지연된 시간 속에 갇혀 모두 몸이 퍼질 대로 퍼졌습니다. 진휘님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저에게 뛸 수 없는지 확인을 하고, 저는 그 물음에 응답하고자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미 제 다리 상태는 참고 달릴 수 있는 상태를 이미 벗어난 듯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제 의지로 그나마 통제할 수 있었던 건 마지막 깔딱고개를 오르던 약 85km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다리가 약간 허우적대듯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이상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10km를 2시간 더 걸어 약 100km 지점에 있는 보너스 CP인 WP(워터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진휘님은 쏟아지는 잠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쪽잠을 자기 위해 먼저 달려와 WP에 마련된 테이블에 뻗어 있으셨습니다. 저는 급격하게 내려간 기온으로 몸살 느낌이 살살 오는 것 같아 주최 측에서 마련한 수프를 마시고 곤히 잠든 진휘님을 깨워 마지막 10km를 향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피니시라인만 남았습니다. 평소 10km면 우습게 달리는 거리인데 이상하게 거리가 줄지를 않습니다. 20km를 4시간 동안 걸어간다는 게 그리 힘든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지쳐하는 것 같아 보이니 옆에서 진휘님이 뭐라 뭐라 말을 계속 거시는데 이제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피니쉬 200m가량을 앞두고 진휘님께 먼저 피니시 하시라고 보내고 저도 뒤따라 피니쉬를 했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무사히 완주해냈습니다.
이번 대회로 저는 최장거리 PB와 최장시간 PB 동시 기록을 세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속도, 기록이 중요하겠지만 저에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동행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래서 진휘님과 함께한 이번 대회가 너무 소중한 추억입니다. 물론 배탈 문제가 아니었다면, 부상이 없었더라면 아마 조금 더 좋은 기록으로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실제로 진휘님만 뛰었다면 20시간 언더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게 뭐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이 대회에서 크게 다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피니시 라인을 함께 통과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잘한 점>
초반에 가장 힘든 업힐을 안정적인 속도로 마무리했다.
전체 레이스에서 에너지젤을 1개만 사용했다.(배탈만 아니면 다음에는 필요 없을 것 같다)
비상약품에 대한 준비를 잘했다. 다만 다음에는 혹시 모를 배탈을 대비해 배탈약도 챙기자
50시간 무수면 상태로 거의 26시간의 레이스를 완주해냈다(정신력 승리)
이제는 100K 트레일까지는 혼자 할 용기가 생겼다(물론 지금은 전혀 생각이 없다)
<반성할 점>
역시 초반 오버페이스는 경계해야 한다.
부상이 있긴 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업힐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업힐에 대한 스페셜한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스틱 사용에 대해서는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차라리 사용을 하지 말자. (다만 부상이 확실할때는 분명 도움이 된다)
#사진후기
대회 기록..
주최측에서는 분명 고도가 3,800m 이라고 했는데 누적고도가 5,000m가 넘었다. 어느정도의 오차는 항상 있지만 이번건 좀 심했다.












출발점에서 진휘님과 사진 한장.






드디어 출발이다! Rock Your Seoul! 가즈아~~!!



레이스 중간에 찍은 사진들. 사진만 보면 즐거워보인다.. 이렇게 기억은 미화되겠지...



























부상으로 인해 절룩이며 내려가는 나.. 가장 페이스가 느린 나에게 맞춰 모두가 뛰어줬다. 그 배려를 항상 기억하자.



드디어 피니시... 정말 고생 많았다. (그리고 이제 그만해)



완주메달이 참 고급지다.









마지막으로.. 매번 못난 남편의 무모한 도전으로 잠도 제대로 못자구, 마음 졸인 우리 여보야에게(창호님꺼 빌려 써봅니다..) 넘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 남편 그래도 완주했다고 나 오기 전에 이렇게 아이들과 이벤트도 해주고 진짜 난 행복한 남자다. 가정에 더 잘해야겠다.



이상 쓸데없이 길기만 한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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